풀잎은 태풍에 쓰러지지 않는다.
태풍이 지나간 거리를 걷다 보면
지상으로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는
왕벚나무나 플라타너스들은 대부분 키가 큰 나무들이다.
바로 그 옆에 있는
키 작은 나무나 풀잎들은 언제 태풍이
불어왔느냐는 듯 쓰러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아름드리 거목들이 태풍을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꼿꼿하게 태풍과 맞서 싸우기 때문이다. 태풍에 대한
그들의 당당한 태도는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그 죽음의 결과는 너무나 처참하다.
만약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유연하게 자신을 낮출 수 있었다면
쓰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약함보다는 거목으로서의 강인함을 먼저 생각하고
태풍과 싸워 이기려고 노력했다.
태풍에는 자신을 낮추고
굽힐 줄 아는 나무만이 살아남는다.
보란 듯이 자신을 과시하는 나무는 쓰러진다.
그것은 겸손하지 못한 거목의 오만함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한 그루 거목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들면서 스스로
태풍이 되었다고 여길 수는 있지만 태풍처럼 강한
존재가 될 수는 없다. 풀잎을 보라. 풀잎은
태풍에 쓰러지지 않는다. 풀잎은
태풍이 불어오면 일단 몸을
굽히고 삶의 자세를
겸손의 자세로
바꾼다.
풀잎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태풍과 맞서는 경우는 없다.
행여 쓰러진 풀잎이 있다 하더라도 태풍이 지나간 뒤에는
대부분 스스로 일어나 하늘을 본다. 그러나 나무는 한번
쓰러지면 누가 일으켜 세우지 않는 한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을
낮추지 못하고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남 앞에 군림하는 자세로 서 있던
이들은 결국 부정과 부패의
태풍 앞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스스로 자신을
이 시대의 지도자라고 여기는 이들도
국민 앞에 육체의 고개는 숙이지만 마음의 고개는
제대로 숙이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의 선택이라는
태풍이 불어오면 자신을 굽히지 않고
태풍과 맞섰던 나무처럼
쓰러지고 만다.
-정호승의 새벽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