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싶은 이야기

소에게 미안하다.

slzh 2008. 7. 2. 09:38

 

 

                            소에게 미안하다.

 


스물넉달 짜리 소와 서른달 짜리 소는 어떻게 다를까?

스물넉 달까지는 괜찮은데 거기서 여섯 달을 더 연명한 소는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다. 온 나라가 광우병 소동에 휘말리면서 소에게 서른 달을 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치욕인가가 만천하에 알려졌다.

한국인에게 사람 하나의 목숨보다 소 한 마리의 목숨이 더 귀하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소는 사람과 의사를 소통했고 감정도 소통했다.

“겉보기는 미련하나 소처럼 정 깊은 짐승도 드물다. 소는 팔려간 송아지가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운다. 어미에게서 떼어져서 팔려가는 송아지가 우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병들어서 아플 때 울고, 쇠전에 끌려가 주인이 바꾸일 때에 눈물을 흘린다.


그뿐만이 아니라 소는 웃기조차 한다. 좋아할 때에 웃는다. 암소의 암내를 맡고 고개를 조금 하늘 쪽으로 쳐들고 윗입술을 까고 별로 예쁘지도 않은 이빨을 드러내 놓고 웃는 황소의 웃음을 농촌 사람들은 흔히 본다. 아낙네나 머슴이 가마솥에서 막 퍼낸 여물을 담은 여물통을 들고 외양간에 갈 때에 그 구수한 냄새를 맡고 웃고, 개구쟁이 아이가 그 코에다 대고 오줌을 눌 때에 혀를 널름거리면서 그 오줌 물을 받아 핥으면서 웃는다."


한창기선생이 쓴 <소, 사람과의 인연>이라는 글에 등장하는 이런 소들은 그러나 이제 우리 강산에 없다. 엊그제까지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있을 것 같지만 어느새 말끔히 사라졌다.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던 그 소들은 사방을 둘러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시대에 한국인들에게 소는 한우와 수입소라는 먹을거리로서만 존재한다. 한우라면 말 그대로 한국의 소라는 뜻이겠지만 이제는 수입 소에 대칭되는 동물성 식품의 하나를 가리키는 말로 쓰일 뿐이다.


4천 년 전쯤에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온 우리나라의 소는 긴 세월 한결같이 태어남 그 자체로서 인간에게 기쁨을 주었고, 태어난 지 몇 달 뒤부터 노동력을 제공하기 시작해서 늙고 병들 때까지 인간을 위해 일하고 또 일했다.


그러다 늙어서 힘이 빠지면 죽음을 맞이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부터 살코기, 뼈와 내장은 말할 것도 없고 발톱까지 인간에게 바쳤다.

한국에서 오늘의 소들은 인간에게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냥 길러질 뿐이다. 좁은 우리에 갇혀서 인간이 가져다주는 먹이를 먹고 거의 한 자리에 서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수소는 태어난 지 열 달에서 열두 달 사이에 인간의 식량으로 가공된다. 그런 수소들에게 암소의 암내를 맡고 ‘웃을’ 기회가 있을 턱은 없다. 암소들은 수소보다 좀 더 오래 서서 지낸다. 열두 달 정도를 살고 나서 임신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새끼를 배고 낳기까지 한 열 달을 보내다가 새끼를 낳고 나면 역시 식량으로 변한다. 이렇게 소를 일찍 고기로 만드는 것은 활발히 움직이며 노동하던 때와는 달리 시간이 더 지나면 고기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며, 더 키워봤자 사료비만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들도 한우와 사정이 다르지 않다. 거기서도 대개 태어나서 열대여섯 달 지나기 전에 고기가 되고, 암소들도 대체로 스물넉 달을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서른 달까지 살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 소들이 광우병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미국의 소들에게 스물넉 달과 서른 달, 그 여섯 달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실은 거기에 아무런 본질의 차이가 없다. 다만 동물성 사료를 여섯 달 덜 먹고 더 먹은 차이밖에 없다. 그 차이가 광우병 발병의 위험을 더 높인다는 데에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소는 원래 스물다섯 해 넘게 살도록 생명을 허락받은 동물이다. 그러나 스물다섯 해는커녕 고작 스물넉 달이냐 서른 달이냐 하는 것으로 인간의 입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소의 본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는 인간의 간계가 거기에 있을 뿐이다. 소에게 미안하다.


                                                             <김형윤의 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