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숙자의 기도
어느 노숙자의 기도
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 일 뿐..
한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
하루해가 아쉬웠는데
모든 것 잃어버리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따로 매였던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굶어 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 하겠노라
이를 깨물든 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무너지고
무료 급식소 대열에 서서…
행여 아는 이 조우할까 조바심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 숨기며
아려 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
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그 많든 술친구도,
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
인생을 강등 당한 나에게 이제는 아무도 없다.
밤이 두려운 것은 어린 아이만이 아니다.
50평생의 끝 자리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석촌 공원의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만감의 상념이 눈앞에서 춤춘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난마의 세월들...
깡소주를 벗삼아 물마시 듯 벌컥 대고
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빨랫줄 서너 발 사서 청계산 소나무에 걸고
비겁한 생을 마감하자니
눈물을 찍어 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안 돼! 아빠 안돼! 아빠 " 한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교만도 없고, 자랑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가야지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편하다고 주저앉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 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가야지...
걸어가야지...
충정로 사랑방에서 한동안 기거했던 어느 노숙인의 글
-2010년 5월 22일자 조선일보에서 발췌-